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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가치가 있는 것

이 다음에 노무현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 한겨레 토막 글

일전에 별로 크지않은 장사를 문닫은 한 지인이 "노무현이 정책을 잘못써서 이렇게 되었다"며  성토하는 것을 다 들어 주고나서 위로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지인의 가게는 대형유통업체가 들어서는 바람에 점차 쇠락하게 되었더군요. 그 지인은 대형유통업체가 들어선다는 사실을 알고도 "내 단골은 아무도 못 빼앗아 간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래 장사를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그 지인은 2년을 버티다 가게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5년 전에 노무현을 찍었는데 이번에는 2번을 찍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그리고 대형유통업체와의 관계와 그 배경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중앙정부와 대형유통업체는 별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좀 머쓱해 하더군요. 그리고는 화제가 다른 쪽으로 돌아 갔지만, 노무현때문에라는 그 지인의 주장은 여전했습니다.

 

이렇게 5년동안 우리는 노무현의 인간적인 면에 감동하기도 하고, 부당한 탄핵을 몸으로 막아주기도 했고, 대선에서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공적이 없다고 '무능'으로 매도하며 노무현을 깎아 내리기도 했습니다. 기대보다 실망이 컷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노무현을 욕해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면, 한줌의 카타르시스를 건질 수 있었다면 한표의 권리를 보상받은 셈이지요.

 

노무현 정부 들어서 먹고살기 힘들어 졌다고 난리입니다. 성장율이 낮아 경제 망쳤다고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이들은 박정희, 전두환시대가 더 나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마 이들에게 과거로 돌아가라면 아무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한 술 더떠  IMF환란 시절로 돌아가라면 지레 손사레를 칠 것입니다. 그러면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사람들의 욕은 노무현을 향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책임은 정치권력과 기득권층의 함수관계 즉, 역대정부의 사회 주도층, 기득권 세력의 성장과 분화 과정을 들여다 보면 가늠할 수 있습니다. 과거 정권은 단지 민주화 세력의 저항만 누르면 모든 것이 순조로왔지만 노무현 정부은 사상 가장 강한 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을 하기에도 벅찼습니다. 민주화 세력의 무능론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정희 시대의 기득권층은 정치권력과 거기에 빌붙은 권력이 전부였습니다. 박정희만 따르면 잘먹고 잘사니 저항이 있을 수가 없었지요.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기에, 말 한 마디면 밤새 한강다리도 만들만큼 인위적인 성장정책이 가능했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20년 가까운 집권 기간에 경제를 그만큼 성장시키지 못했다면 무능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의 희생되었지요. 월남전에서 돈번다고 얼마나 많은 병사가 죽어갔으며, 정권유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까. 이 희생이 없었다면 박정희는 영웅이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자이툰 부대의 병사 한명만 희생되어도 난리입니다.

 

전두환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을 다 쥐고 있으니 뭐든지 통제가 쉬웠지요. 그때 어느기업이 함부로 물가 올렸습니까 ? 게다가 박정희가 남긴 산업화 유산도 있어 겉으로는 사회가 안정되어 보였던 것입니다. 광주 대학살을 자행하고 군부 쿠테타로 집권해 겉으로는 사회정의구현, 경제안정를 내 세웠지만 뒤로는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는 정경유착과 권언유착의 악습을 심화시켰습니다. 그것이 노태우로 승계되고 민주화 바람과 공존하면서 IMF의 씨를 뿌린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김영삼 정권은 구시대와 신시대의 패러다임이 충돌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경제살리기가 화두였지만,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간간히 나왔습니다. 기업이 먼저 위기의식을 느끼고 시대 상황에 맞게 경영환경과 체질개선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정부 경제관료들 조차 위기를 인정하기 싫어, 늘 경제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이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기득권층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하기 시작했고, 다원화되면서 층이 두터워졌습니다. IMF환란은 기득권층이 상당한 힘을 비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진자는 더욱 더 큰 힘을 가지게 되고 가지지 못한자는 더 허약해 진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쪽박찬 나라를 떠맡아 고군분투하며 환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층의 저항은 약했습니다. 한나라당은 나라망친 책임에서 찌그러져 있었고, 공적자금 투입해 기업을 살려주는데, 기득권층은 가만히 있기만하면 되는 것이었지요. 내수경기를 살리기 위한 부작용인 카드대란과 신불자 양산은 어떻게 보면 불가피한 면이 있습니다. 기업 살린다고 공적자금 다 쏱아 붓고 여윳돈이 없다고 돈을 마구 찍어서 국민에게 줄 수는 없었잖습니까 ?  IMF 이후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은 오히려 기득권층의 힘을 키우고 결집하게 해 주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그 바톤을 이어받았습니다. 좋은 조건에서 정권을 이어받지 못한 것이지요. 이미 국가 3대권력 중 의회권력과 지방권력은 한나라당이 장악했고, 기득권층의 권력은 대부분 한나라당 편이었습니다. 그 정점에 있는 한나라당은 국정발목잡기, 언론권력은 뭐든지 깎아내리기, 자본권력은 정치권력에서 독립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관리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힘을 비축한 기득권층의 조직적인 저항에 겨우 중앙 행정부 권력만 가진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번번히 제동이 걸렸습니다.

 

양극화나 비정규직 양산도 기득권층의 욕심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더 쉽습니다. 사회복지는 기득권층의 양보가 선행되지 않으면 국가로서도 어느정도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대자본이 중소기업을 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 늘리기도 어렵습니다. 거대자본이 상권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자영업자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국가가 경제를 향상시키기 위해 대규모 공사를 하더라도 서민에게는 일시적인 혜택만 있을 뿐입니다. 기득권층만 배를 불리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경제정의를 통한 분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서민은 늘 기득권층의 희생물입니다.

 

이제 한나라당과 기득권층이 원하던 세상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수장이 온갖 편법, 탈법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지만, 서민들 조차도 배고프다며 표를 넙죽 던져 주었지요. 걱정되는 부분이 많습니다만, 정말 잘되어 서민들이 배고프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국가가 한 가정의 쌀독까지 채워주지 않습니다. 이제 국가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관리자일 뿐입니다. 이렇게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기업이든 개인이든 원칙과 상식의 범위내에서 자율경쟁을 통해 발전을 모색해야 합니다. 원칙과 상식이 깨어지고 편법과 탈법이 판을치는 사회는 권력과 돈을 가진 기득권층만 유리해집니다. 부패가 없고 사회 투명도가 높은 나라가 가진자나 못가진자나 평화롭게 잘 산다는 것은 OECD 상위 국가가 말해주지 않습니까 ?

 

우리가 지금은 노무현의 잘못을 비판하고 욕을 할지라도, 머지않아 우리는 노무현을 그리워할지도 모릅니다. 미안해할지도 모릅니다. 한끼의 밥이 우리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되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못이겨 몇가지 실수는 있었지만, 노무현이 욕을 먹으면서도 평화정착, 자주외교, 지방분권, 권위타파, 국가 중장기비전수립등 국정 전반과 경제의 내실을 생각보다 잘 다져두습니다. 노무현의 공과와 시대적 가치는 역사가 평가해 주겠지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음은 분명합니다.


끝으로, 가장 좋은 대통령으로 누구를 꼽으시겠습니까. 철권통치 박정희, 광주학살, 29만원짜리 인생 전두환, 놀고먹다 돈먹고 튄 노태우, 나라경제 확실히 거덜낸 김영삼, 욕심은 있었지만 제 몫을 한 김대중, 욕 많이 먹어 배부른 노무현 중에, 누가 가장 좋은 대통령이었다고 기억하렵니까.

출처 : http://blog.hani.co.kr/kdshb/10882